사람들이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꾼다, 미술작가 우정아 동문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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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http://info.sookmyung.ac.kr/bbs/sookmyungkr/82/28865/artclView.do?layout=unknown

현대사회가 점점 개인화되면서 우리의 삶에서도 고독이 일상화되고 있다. 혼밥, 혼술은 이제 더 이상 눈길을 크는 트렌드가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고, 사람 사이의 교류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여기, 사람과 사람 간의 이야기와 놀이를 통해 우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 우리대학을 졸업하여 현재 미술작가로 활동 중인 우정아 동문이다. 우 동문은 지난 겨울, 서울 시청 광장에서 로프트:서울야외 전시를 개최해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에 숙명통신원이 우정아 동문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대학 회화과 87학번 우정아입니다. 1991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입체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 지난번에 시청광장에서 작가님의 설치작품 로프트:서울의 야외 전시가 개최되었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어떤 전시였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전시는 서울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에요. 주최 측에서 제시한 테마는 사람들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었고, 그 부분이 제 작업과 굉장히 잘 맞았어요. 그래서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서울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해봤어요.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삶의 방식이나 시선이 잘 나타나요. 저는 살면서 끊임없이 유랑자처럼 떠돌아다녔는데, 새로운 지역을 접할 때 지도를 통해 그 곳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시작하곤 했죠. 그 과정에서 형상화된 이미지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지도를 통해 추상적인 느낌을 형상화시키곤 합니다.

 

먼저 지도를 통해 서울을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해보니, ‘빌딩과 아스팔트, 사람, 차 등을 모두 없애고 나면 지도에서의 모습과는 어떻게 비슷할까 혹은 다를까이렇게 생각해보았어요. 본질적인 땅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서울 지도를 가지고 자연적인 환경을 재배치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러다 로프트라는 천과 바람으로 땅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어요. 로프트는 얇고 가벼워서 크게 부풀리거나 작게 접을 수 있는 천이에요. 덕분에 바람에 의해 부풀려진 작품의 모습이 서울의 치솟는 땅값이라고 말하신 분들도 계시고(웃음), 여러 가지 코멘트들이 나올 수 있었죠. 그래도 그 중 가장 중점을 둔 건, 사람들이 그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쉬어가기도 하고 놀다 갈 수 있게 만든 공간이라는 점이에요.

 


 

- 26년 만에 한국에서 진행한 전시라고 들었는데,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사실 크게 남다를 건 없었어요(웃음). 이번에 한국으로 온 건 미국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앞으로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것이지만, 26년 동안 미술 활동의 기반은 모두 미국에 두고 한국은 잠깐 들러서 쉬는 곳이었어요. 그래도 막상 작가로서 활동을 안 할 순 없더라고요. 이번 전시는 서울 시청 광장에서 진행했던 만큼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큰 미술관이 아닌 이상 많은 사람들이 미술 갤러리라는 공간에 쉽게 오진 않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작업한 것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보람찼고 의미 있었습니다.

 


 

- 미술가로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보람차거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예전 한국에서는 사회 이슈나 정치적인 내용을 작품에 나타내려는 경향이 컸었는데, 제겐 한계점과 같았어요. 작업을 열심히 한 뒤 갤러리에 전시해서 제 작품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있는 게 좋은데, 일부 사람들만 찾는 것이 싫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길거리에서 트럭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기도 했어요.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한 수단이자 과정이 바로 트럭이 가진 상징성이라고 생각해요. 제 작업에서는 이동이 쉽고 빨리 펼치거나 접을 수 있는 것을 가장 중시하는데, 그래야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미국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일부 지역에서 진행한 ‘Story Line Transport’라는 작업이 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옆모습을 찍은 이미지와 몇몇 캐릭터를 조합하여 본인을 형상화한 이미지를 만들고, 그걸로 트럭에 그림자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죠. 제가 그 작업을 할 때 만난 지역 주민들은 너무나 빈곤해서 이사조차 하지 못하거나, 생활고가 어려워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이나 여가의 기회를 주기 어려운 이들이 많았죠. 다행히 장이 열릴 때 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그래서 장에서 작업을 진행했어요.

 

그 때 그분들이 정말 행복해했고 즐거워했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해요. 아이들보다 성인들이 더 즐거워하기도 했는데,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기에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낼 작은 시간조차 없었던 것이었죠. 또 본인의 이미지와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카고에서는 몇몇 분들이 다른 지역 작업에서도 오셔서 제 손을 붙잡고 너무 고맙다고 울면서 인사하시기도 하셨죠.

 

‘Story Line Transport’ 작업은 엄청난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오기 보단 당장 햇빛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굉장히 의미 있고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엔 정말 다양한 작업이 존재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그 안에서 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선택한 것이죠. 그게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베푸는 게 너무 좋았고, 진심으로 즐기고 기뻐하시고 고맙다고 해주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굉장히 힘이 돼요. 그래서 그런 작업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반대로 힘들었던 점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미국에서 기획서를 쓰고 제출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지원이 없는 작업은 정말 힘들어요. 일단 영어로 모든 서류를 작성해야한다는 점이 걸림돌이었죠. 그리고 기획서를 쓸 때는 굉장히 다양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해요. 저 사람들이 내가 하고픈 작업을 할 수 있게 지원을 해주도록 잘 말해야한다는 걸 항상 고려해야 하죠. 동시에 색다른 경쟁력을 위해선 굉장히 많이 준비해보지 않은 이상 무엇이 내 특장점이고 가장 설득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개인 작업이 대부분이어서 기획서를 거의 혼자 썼어요. 처음에는 무조건적으로 부딪혔던 것 같아요. 요즘엔 쉽게 정보를 찾고 정리할 수 있지만, 그 땐 달랐죠.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1시간 동안 전시 정보와 기획서에 들어갈 내용을 찾았어요. 그렇게 모은 정보를 통해 앞으로 일정 기간 내에 준비해서 지원할 수 있는 곳을 정리했죠. 그런 과정은 자신이 시작해야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직접 해보질 않으면 단 한 번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죠.

 

그리고 경제적으로 생활이 좀 어려웠어요. 캔자스에서 살 당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강의를 여러 개 한 탓에 제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었어요. 수업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고, 제 작업을 할 수 없으니 나중엔 너무 힘들어졌죠. 그래서 강의를 한 두 개만 하고 제 작업을 위한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바꿨죠. 사실 저는 작업만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부족한 건 없어요.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힘든 건 없어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으니까요(웃음).

 

- 작가님의 미술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주로 전달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로프트와 같은 제 작업들이 사람들에게 서로 만나서 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해요. 어떤 면에서는 공동체적인 면을 지향하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제 작업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놀이적인 형태도 사실은 놀이를 통한 문화적인 만남, 함께하는 과정들을 나타낸답니다.

 

예전에는 공동체적 모습이 우리의 문화에 많이 배여 있었지만, 요즘에는 많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이 개인화되고 분리되는 게 아주 건강한 사회를 위한 방법은 아니라고 보거든요. 무조건적으로 공동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가 알던 전통적 가치들이 많이 깨졌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제 작업에서의 놀이적인 접근이 나쁘지 않았고, 여전히 사람들이 공동체적인 모습을 갈망한다고 생각해요.

 


 

- 작가님과 같은 꿈을 꾸는 숙명인들이 대학 학창 시절에 할 만한 활동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특별한 활동들을 추천하다기 보단, ‘자세를 추천하고 싶어요. 제일 중요한 건 열심히 작업을 하되, 스스로 경쟁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자기가 본인을 자꾸 드러낼 수 있어야 해요. 요즘엔 국내에서만 활동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잘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잖아요. 중요한 건 그걸 본인이 얼마나 집요하고 알맞게 찾고 얼마나 노력을 하는가. 절대 한 번에 되진 않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어요. 그게 쌓여서 어느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경쟁력이 될 거예요. 요즘은 정말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세상인 만큼, 안 하는 게 바보가 아닐까요? (웃음) 작업이라는 건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것만이 아니에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구상하고, 그것도 작업의 과정이죠. 어떤 방식이든지, 집요하게 하는 게 필요해요.

 

-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현재는 공연하는 분들께서 제 로프트 작업에 관심을 가지세요. 그래서 그 분들과 협업해서 작업을 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로프트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나 구성을 하고 있어요. 로프트가 부피가 크기 때문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야외로 잡거나, 혹은 축소해서 갤러리 등에서 하거나, 구체적이진 않지만 이런 구상을 하고 있어요. 저는 제 작품이 진화하는 로프트였으면 좋겠어요(웃음).

 

- 마지막으로 숙명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은 없답니다. 우리는 늘 조금만 준비를 좀 더 하면 잘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죠. 잘 알다시피 더 많이 준비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스스로 제 안에서 작업들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아이디어를 얻고, 기획하고, 작업을 준비하고, 작업을 하는 모든 과정이 늘 잘 배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준비도 준비지만, 나아가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영어를 못한다고 기죽지 마세요. 언어는 소통을 위한 것이지, 상대방이 여러분의 발음이나 문법이 틀려서 대화를 거부하진 않아요. 대화는 30%가 언어라면 나머지는 몸짓, 표정으로 이루어지잖아요. 너무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면 말을 시작할 수가 없어요. 조금 못 한다고 주눅들 필요가 뭐 있을까요. 안 되면 넘어가면 되죠. 깊이 있는 대화를 하려면 영어공부를 더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지금 여러분이 걷고 있는 길 말고도 다른 길, 다른 일로 살아보는 것도 좋아요. 무조건 내가 지금 시작한 삶만을 인생의 끝까지 추구해나갈 필요는 없다는 거에요. 제 친구 중 한명은 본업은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굉장히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했어요. 어느 날부터 매일 피아노를 조금씩 치기 시작했는데, 10년째인 지금은 피아니스트처럼 굉장히 잘 쳐요. 이런 삶을 위해선 늘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물론 많은 시간을 할애하긴 어렵겠지만, 매일 시간과 노력을 조금씩 투자한다면 인생에서 또 다른 좋은 성과와 재미있는 삶을 얻을 거예요.

 

취재: 숙명통신원 16기 박희영(식품영양학과16)

정리: 홍보팀